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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이 모든 게 당연한 듯이 살아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물음들은 배고픈 철학자들이나 하는 붕 뜬 소리라며 등한시한다. 당연한

듯 삶을 살아가는 그 주체는 자기 자신이라고. 나의 질문은 이 '당연하다.'라는 말에서 시작한다. 학교에서 배우며 학

습했던 것들이 전혀 쓸모없는, 우리 존재 자체가 소비 주체에서 소비를 당해야 하는 객체라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접

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당연한 듯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고, 성관계를

갖는 이런 일련의 과정과 행동들이 당신에겐 무의미한 것들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소설 속 주인공을 포함한 기증자로 태어났다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는, 생산된 객체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도 되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흔히 말하는 지식인들이라면 이들을 지지하는 갖가지 운동

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들을 돕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인 마냥 열렬히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 더

나아가서 소중한 주변 사람들이 이들로부터 장기를 이식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건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것

이다. '이들은 그저 우리를 위해 생산된 존재'라고 빠르게 인식의 전환이, 원래 그랬던 것 처럼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잔인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 먹길 그렇게 태어났을지도 모르니까. 이상이 현실의 고통을 잊

게 해주는 건 아니니까.

      루시 선생이 헤일셤 학생들을 자각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들은 이상하리만큼 지나치게 순수하

게 기증자로서의 삶이 당연한 듯이 말한다. 반대로 그런 말을 하는 루시 선생이 이상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소설 막

바지에 마담과 에밀리 선생님을 만난 토미의 모습은 그들을 가장 솔직하게 대변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통제된 학교

에서 순수함을 유지하며 성장하던 아이 중에서도 가장 그 순수함을 뚜렷하게 보여주던 토미가 회복센터에서 벤치에서

다른 기증자들과 같이 다른 기증자들처럼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기증을 연기하기 위해, 혹시라도 모르니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 적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마담을 찾아갔던 토미가 '기증은 즐거워'라고 말하는듯한 표정으로, 삶

을 체념한 듯이.

     인간은 인간을 낳는다. 또한, 인간은 인간을 낫게 한다. 하지만 단순히 더 오래 살고자 인간이 인간을 생산하는 게

바람직할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그렇게 고장 난 부품을 바꿔 끼우듯, 그렇게 다른 인간에게서 스페어 부품을 떼 교

체하는 게 당연할 수 있는 건가? 그 스페어 부품 때문에 한 사람은 사는 반면, 한 사람은 죽는 데 말이다.

      사실 민음사 서포터즈 등록을 위해 고른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었다. 그런데 서고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책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은 가벼웠지만, 주제의 무거움과 400p에 달하

는 책의 양은 쉽사리 읽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결국 서포터즈 지원은 할 수 없었다.

     세상엔 자신도 모르는 운명이라는 게 있다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거스를 수 없다고 한다. 마치 그것

이 세상의 이치인 마냥. 하지만 운명은 개척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기증자란 클론을 생산해 더 오래 살고

자 하는 인간이란 생물은 운명을 개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비록 세상의 이치를 거스를지 몰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