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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oboem 2011. 8. 16. 19:36




  상실의 시대 완결판이라 불리는 작품이라 이전에 애뜻함을 느꼈던 전작의 주인공 와타나베와 나오코, 미도리를 다

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보는 내내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명확하진 않지만 아련한 흔적 같은 걸 느낄 수 있

었다.

  전작에서 와타나베가 20대에 열병 같은 것을 앓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37세가 되서야 뒤늦게 그 열병을 앓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하지메가 보여준 모습들은 어쩌면 보통의 남자들이 첫사랑을 그리워 하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보통은 그것을 추억으로 그리며 살아가는 반면, 하지메는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안정이 깨져버릴 것이 두려워 망설이는 일반 가장과는 달리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어쩌면 이전까지의 삶에

서 벗어나 정신적 상실을 채우고자 일탈을 시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한창 젊은 20대에 다시 만났다면 이 책의

엔딩이 어쩌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한 쪽은 이미 아내가 두 자녀가 있는 37세. 한 쪽이 솔로라고 표현됐지만 말

이다. 
 
  시마모토는 하지메와 만나면서 점점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들, 하지메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하고 싶었던 것들이 사실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것이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고 있는 것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차 안에서 같이 죽고 싶었던 것, 섹스 중에 했던 행동, 그 중에 나눴던 대화는 그것들을 갈망해왔으면서도 사

실 마음 속에서는 아무도한동안도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하지메와 가질 수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선 채울 수 없고 타인에 의해 생긴 상실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을 지도 모른다.

아니 채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사실 하지메의 지독한 환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노르웨이의 숲과의 큰 차이점이라면 전작에서는 와타나베가 나오코의 죽음 이후에 미도리를 찾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내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줬

던 주된 모티브 '사랑, 실연, 상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이후에 상실의 회복 과정이 포함된 게 아닌가 싶다. 한 가정이

파괴될 수 있는 상황에서 한편으론 시마모토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쳤지만 마치 홍역을 앓은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만 남긴 채 나을 수 있었던 건 유키코가 앞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하지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게 아닐

까 생각한다. 

  마지막에 하지메는 그동안의 일들은 잠시 미뤄두고 한발 나아간다.

'내일부터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데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따스히 포용하는 유키코. 이런 유키코가 없엇다면 사실 하지메는 이런 성숙할 수 있는 과정을 겪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

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지독한 홍역에서. 그리고 마지막에 잠들 수도 없이 공허한 그에게 아무것도 남

아있지 않아 힘이 없다기 보다는 태양의 서쪽으로 가는 입구이자 출구인 국경에 다시 서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국경

을 통과하려면 미허가 물품은 가지고 통과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태양이란 큰 존재에게 동서남북이란 방향은 커다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일이 없을지도 모를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인간이 있을지도 모를 중간으로 나아가고자 규정지은 건 아닐까.


 
Frank Sinatra - South of the border